외국 공항에서 보딩을 하기 위해 줄을 서있다 보면 한 무리의 필리핀 사람들이 눈에 띌 때가 있다. 분명 서로 안면이 없는, 각자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곧 친해진 그 무리들은 다정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어깨를 툭툭치는 장난을 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지 않았다면 마치 죽마고우처럼 다정한 사이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공항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쉽게 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생활방식 그 자체이다.
이러한 친구 문화는 점점 더 확산되어 나이를 넘고 성별을 넘는다. 비슷한 또래여야만 친구라고 생각하는 우리 정서와 비교하면 상당히 서양적인 사고방식임을 알 수 있다. 필리핀은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지만 오랜 식민지의 영향으로 서양식 사고방식이 굳어진 모습을 사회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로 그 대표적인 모습이 친구 관계다. 필리핀을 방문해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친구하자며 손을 내민다면? 그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그대로 친구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냥 새로운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인사라도 한번 나누었고, 통성명이라도 했다면 이미 이들에게는 친구 관계가 형상된 것이다. 거기에 친구의 친구도 친구고 형제 자매의 친구도 자신에겐 친구다. 설령 이름을 몰라도 인사를 나누었다면 이들에게는 친구다. 이러한 낙천적인 성격은 이들에게 놀라운 친화력을 만들게 했다.
필리핀 여행 중 낯이 조금 익은 호텔 벨보이가, 혹은 호텔 앞에서 호객행위 하는 택시 운전기사가 친구하자며 손을 내밀어도 특별히 경계할 필요는 없다. 이들은 이것이 습관이요 생활이다. 가끔 귀찮은 부탁을 하는 게 문제긴 문제지만. 귀찮은 부탁이라면 팁을 달라거나 선물을 달라는 내용이다. 뜬금없고 무례한 요구에 언뜻 불쾌하겠지만 필리핀 사람에 대해 알고 나면 이 또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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